엔저가 지속되면 아무래도 우리나라 수출 주력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HSBC와 크레디트스위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일제히 엔저 최대 피해국으로 한국을 지목했다.
산업별로 보면 특히 일본 기업과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합하고 있는 분야가 타격이 크다. 2011년 기준 한국과 일본의 수출 상위 10대 품목에서 9개 품목이 중복된다. 자동차, IT, 기계, 철강 등이다.
따라서 같은 산업에서 수출 경쟁을 벌이는 일본 기업이 엔저로 환율 경쟁력이 생기면 우리나라 기업은 그만큼 수출이 어려워진다.
반면 엔저로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상승하면 한국 주력산업에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엔저로 일본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면 글로벌 경제가 불황을 벗어나고 글로벌 무역 시장이 좋아져 결국 국내 기업들에도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신현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5년에서 2007년까지 세계 경기가 좋을 때는 엔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이 13.5%로 높았다. 하지만 2008년 이후 4년가량 엔고였지만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아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은 12.5%에 그쳤다. 결국 엔화 약세가 수출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엔저보다는 글로벌 경기가 더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환율 1% 하락하면 현대차 수출 1% 감소 엔저 타격을 직접적으로 입을 확률이 높은 업종으로 자동차나 철강, 화학, 기계 등이 꼽힌다. 특히 자동차가 타격이 가장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발전연구원이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현대차 승용차 수출대수와 원/엔 환율을 분석한 결과 원/엔(100엔)이 1% 하락할 때 현대차 수출대수는 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엔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현대차는 지난해 4분기 매출이 10.7%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1조8319억원으로 11.7% 줄었다. 기아차 역시 환율 리스크를 벗어나지 못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4042억원으로 전년 동기(8269억원)보다 51.5%나 줄었다. 채희근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부문 영업이익률은 기존 예상치를 밑돌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로 국내 완성차업체 수출 경쟁력이 하락하는 반면 일본 완성차업체는 엔저의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다.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빅3 자동차업체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32.1%로 2%포인트가 늘었다. 지난해 미국 자동차 판매대수 171만대 중 48%를 일본계 자동차 회사가 차지했다.
이경우 울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엔저로 해외에서 일본차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자 일본차와 경쟁하는 현대차 가격은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효과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자동차업계는 아예 일본 자동차업계 경쟁력 상승이 엔저 정책의 진짜 목적이라고 본다. 매트 블런트 미국 자동차정책위원회(AAPC) 위원장은 “일본 자민당의 엔저 정책은 교역 상대국 희생을 대가로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일본의 ‘이웃 나라 거지 만들기(beggar-thy-neighbor)’ 정책을 용인할 수 없다고 경고하라”고 요구했다.
철강 엔화 부채 많아 일부 수혜도 철강업계도 자동차업계와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철강업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만큼 국내 철강업계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국내 철강업체는 일본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주요 수출 시장인 동남아 시장에서 일본 업체 수익성이 좋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엔저가 철강업계에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엔화 부채가 많은 철강업 특성상 수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엔화 부채가 많은 기업은 엔저가 되면 부채 평가액이 줄고 이자비용이 줄어든다. 일부 기업은 지난 6개월 동안 앉아서 최대 1000억원대 부채를 줄였다.
방민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엔화 부채가 포스코는 2조원대, 현대제철은 수천억원대 수준이다. 이런 기업은 엔화 약세 기조가 이어질 경우 금융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대한항공, 롯데그룹,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이 엔화 부채가 큰 주요 기업으로 알려진다.
철강업체의 수출 경쟁력 감소도 아직까진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 분위기다. 엔저는 지난해 6월부터 본격화됐지만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철강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방민진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일본 철강업체들이 엔저를 적극 활용해 제품 단가를 낮추려는 전략을 펴지 않았다. 엔저는 (일본 기업의) 수출 단가를 낮추지만 동시에 일본 철강업체가 원재료를 매입할 때 단가도 상승하기 때문에 쉽게 가격을 내리기 힘들다. 앞으로도 가격을 낮추는 정책을 섣불리 펴지는 못할 전망이다. 향후에도 철강 시장에서 엔저의 실질적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