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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기록으로 다시 쓰는 한국의 산업史
〈2〉자동차와 부품산업 (下)
90년 후반 모듈화 생산방식 도입 세계적 기술 발판마련
국내 완성차와 동반성장… 품질 선진국의 86% 수준 UP
‘자동차’는 2만여개의 ‘부품’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어야 움직이는 기계장치다.
2만여개 부품 중 단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차는 멈추게 된다. 자칫 운전자의 생명에도 치명적인 위험을 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동차산업만큼 자동차부품산업은 중요하다.
1903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맞아 미국 공사 앨런(N.H Allen)을 통해 미국산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국내 자동차 역사는 시작된다. 미국, 일본에서 자동차를 들여와 운수업을 하면서 자동차는 부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15년 모리스상회라는 정비업체가 생겼고, 22년 한국인 최초로 정형묵 형제가 경성서비스라는 정비공장을 설립했다. 당시 정비업체, 자동차부품 판매업체 대부분은 미국인이나 일본인 소유였다.
그러던 중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산 부품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국내에서는 자체적인 자동차부품 조달을 모색하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국내 자동차부품산업은 태동하게 된다. 특히 40년 3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해 자동차부품사업을 시작했고, 일제가 내린 기업정리령에 따라 일진공작소에 흡수되기까지 활발한 자동차 수리업을 하기도 했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세계적 완성차업체로 클 수 있었던 배경이 된다.
광복을 전후해 국내 자동차 보유 대수는 화물차 3639대, 승용차 1311대, 버스 1156대, 기타 1220대 등 7326대 수준에 불과했다. 당연히 부품업이 클 수 있는 기반이 되지 못했다.
45년 12월 서울 소재 자동차 관련 공업인들은 한자리에 모여 ‘조선자동차공업조합’을 설립했다. 49년에는 대한자동차공업협회로 확대 발족하면서 한국 부품산업이 싹트게 된다. 그러나 1년 후인 50년 한국전쟁으로 이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58년 ‘광업 및 제조업 사업체 조사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자동차부품 생산업체는 43개가량이었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흐른 2006년 국내 완성차 5개사의 협력 업체 수는 878개에 달한다. 50년 동안 자동차부품업체 수가 20배가량 많아진 셈이다.
자동차부품산업 초기 자동차부품업체들이 생산하는 부품은 피스톤.피스톤링.스프링.개스킷.메탈 베어링 등 대부분이 AS 부품 수준에 불과했다.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노력으로 인해 자동차부품산업 역시 커질 수 있었다.
일단 62년 새나라자동차는 연간 생산능력 6000대의 규모를 갖추게 됐고, 닛산의 ‘블루버드’를 SKD(Sem Knock-Down) 방식으로 수입해 조립했다. 기아산업은 3륜 트럭인 ‘k-360’이나 ‘T-1500’을 시작으로 69년 4륜 트럭인 ‘타이탄’을 생산했다. 아시아자동차도 피아트와 기술제휴를 통해 70년대 ‘피아트 124’를 생산하게 된다. 67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설립됐고 68년에는 포드와 기술제휴로 ‘포드 20M’과‘코티나’를 생산한다.
74년 정부는 장기 자동차공업 진흥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 계획은 부품 국산화율 95% 이상, 생산 가격 2000달러 내외, 외국에서 생산 및 시판된 적이 없는 소형차를 생산해 81년까지 50만대 규모로 생산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고유 모델이 속속 출시되면서 부품 국산화율 역시 급격히 상승했다. 77년 부품업체 수는 297개였다. 79년에는 451개로 늘어났다. 부품 생산액 역시 70년대 80억원대에 불과했지만 1981년 854억원으로 연평균 23.7%씩 증가했다.
자동차부품 수출 역시 80년대 큰 폭으로 늘어나 75년 970만달러에서 80년 5400만달러, 84년에는 최초로 1억달러를 넘어섰다. 수출업체 수도 75년 33개였지만 82년 140개로 증가했다.
부품 생산업체도 증가하고 수출도 증가했지만 자동차 핵심 제조기술만큼은 크게 늘지 않았다. 오히려 핵심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엔진.변속기.차축 등의 제조 경험은 전무해 이런 부품의 국산화율은 소형의 경우 38%, 중형은 21%에 그쳤다.
당시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키우는 데 더욱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며 완성차 및 부품 국산화를 추진하게 된다. 정부는 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계열화 방침에 따라 완성차업체별로 계열화를 진행한다. 가장 먼저 신진자동차는 69년 기준으로 123개 하청 업체 중 89개 부품업체가 계열화 공장으로 참여한다. 현대차는 당시 31개 업체가 참가했다.
정부와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노력이 밑바탕이 돼 80년대 들어 부품 생산 증가율은 놀라우리 만큼 높아졌다. 82년 5725억원에서 87년 2조6450억원으로 연평균 35.8%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기간 부품업체 수도 660개에서 971개로 늘어났다.
승승장구하던 국내 부품산업은 90년대 말 추진된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결국 부품업체 수 역시 97년 1339개에서 2003년 말 878개로 줄어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도산하는 국내 부품업체들이 대거 외국 부품업체들에 인수되기도 했다. 델파이, 보쉬 등은 물론 비스티온, TRW, 발레오 등이 성우, 한라공조, 덕양산업, 두원정공, 케피코, 만도, 평화산업 등을 인수했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 이후 국내 자동차산업이 구조조정되면서 국내 자동차부품사들은 한 차례 홍역을 앓은 뒤 기술 및 품질 경쟁력을 확보해 나갔다. IMF 후 국내 부품사들의 생산기술은 선진국 대비 80% 수준, 품질은 86%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부품 설계능력이나 생산설비 수준은 70%에 불과하고, 미래형 자동차 개발을 위한 기술 수준은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90년대 후반에는 ‘모듈화’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이 도입돼 국내 자동차산업이 글로벌화 될 수 있는 기초를 다지기도 했다.
부품 모듈화는 99년 현대.기아차그룹이 추진해 계열사는 물론 1, 2차 협력 업체들까지 참여하면서 자동차 생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때부터 꾸준한 기술 개발을 통해 운전석 모듈, 섀시 모듈, 프런트 엔드 모듈 등을 개발하면서 자동차부품 전문 기업으로의 위상을 세웠다.
현대모비스의 모듈화 전략은 소비자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자동차 생산 과정의 복잡성을 대폭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품질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산 비용 절감에, 품질 관리 체계 일원화, 생산성 향상 등 모듈화 효과는 대단했다.
무엇보다 모듈화는 신차종 개발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을 완성차업체와 모듈업체가 나눠서 분담함으로써 완성차업체는 투자비를 줄이고, 부품업체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현대모비스의 진화
91년 갤로퍼 출시…
‘트라제’섀시 모듈 수주계기 부품전문기업 탈바꿈
현대모비스의 모태는 1974년 2월 26일 설립된 현대자동차써비스다. 하지만 정작 현대모비스의 근간이 된 기업은 77년 7월 정몽구 현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몸 담았던 현대정공이다. 당시 현대정공은 컨테이너사업은 물론 전차 생산 및 철도차량 생산 등 중공업 분야에서 활약을 시작했다. 91년 9월 16일 현대정공은 스포츠유틸리티(SUV)차량인 ‘갤로퍼’ 1호를 출시한다. 당시 정몽구 현대정공 대표이사 회장은 갤로퍼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이때 쌓은 경험은 98년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품질은 물론 현대, 기아차의 브랜드 가치를 몇 단계 이상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갤로퍼는 출시 3년 만에 10만대 생산을 돌파했고, 98년에는 갤로퍼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정 회장이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후 현대정공은 자동차부품 전문 회사로 탈바꿈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결과, 철도차량사업 부문을 한국철도차량에 이관했고, 차량.공작기계사업을 현대차에 분할.합병시켰다.
특히 99년 ‘트라제’ 섀시 모듈을 최초로 수주하면서 모듈화를 시도해 부품 전문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후 현대모비스는 기아차 화성공장 운전석 모듈 라인 구축, 소하리공장 내 운전석 모듈 라인 구축 등 현대정공이 아닌 부품 전문 기업인 현대모비스로의 탈바꿈을 꾸준히 준비했다.
2000년 11월 1일 현대정공은 현대모비스로 사명을 바꾸고, 부품 모듈화에 박차를 가했다. 글로벌 자동차부품업체들과 기술제휴와 협력을 통해 부품 생산기술을 글로벌 기준에 맞추는 작업을 시도했다. 지속적으로 해외 시장을 노크한 결과, 2004년 다임러크라이슬러에 컴플리트 섀시 모듈 공급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 밖에도 현대모비스는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에 물류센터 구축은 물론 21개의 해외 법인 설립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허연회 기자(okidoki@heraldm.com) |